침례교회 왜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는가?<?XML:NAMESPACE PREFIX = O />
정 태 윤 목사(달라스 서남침례교회 담임)
타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곧 잘 질문하는 하나는 침례교회는 왜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는가? 입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신학적 근거에 의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침례교인은 신앙의 권위를 “신경”에 두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만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양심을 통제하는 척도로써 최고 기준이며 교회의 권위는 성경의 권위에 종속하는 것을 확인한다.”(인정) 우리는 “교회의 신경, 총회, 선언 등이 성경의 권위 보다 우위를 갖거나 동일한 권위를 갖는다는 것을 부인한다.”
사 도 신 경 역 사
일부 교인들 간에 “사도신경”을 사용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오해와 비판이 있음으로 인하여 “사도신경”의 내용에 관한 역사를 고찰함으로써 이러한 오해와 비판에 답변하고자 한다.
12개 항목에 달하는 내용이 “나는 믿는다(creedo)”라는 신앙고백으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 중 일부를 믿을 수 없는 성도들에게는 예배와 신앙생활에 있어서 “사도신경”의 사용이 불편감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면 이제 상기 언급한 12개 항목의 내용들이 “사도신경”이란 고백문 안에 포함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기술함으로 왜 그 내용의 일부가 불편감을 주는지 검토하고자 한다.
이러한 고찰을 다음 순서에 따라 진술하고자 한다.
I. 기원과 변천 과정
II. 동기와 목적
III. 교리와 신학적 의미
IV. 침례교의 주장
V. Bibliography
{“사도신경“의 내용을 기독교인의 경건 생활을 돕기 위하여 긍정적인 태도로 해설하고 있는 저술들, 예를 들면 Dr. Alister E. McGrath 의 ”I Believe” Understanding and Applying the Apostles’ Creed 등이 있는 반면에, 이 글은 “사도신경”의 문제점을 다루기 위하여 집필된 것임을 이해하기 바란다}
I. 기원과 변천
1. 구 로마신경 2. 초대교회 3. 중세 4. 종교개혁 기간 5. 현대 6. 도전
A. 전설적 기원
“신경(Creed)”이란 무엇인가?
어원은 라틴어의 “Credo”(I believe...)에서 유래된 것으로 자신의 (개인적) 신앙의고백을 뜻한다. 즉 “나는...을 믿는다”는 고백이다. 그런데 “전설”에 의하면 ‘열 두 사도들이 선교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함께 모여서 한 사람이 한 구절 씩 발언하여 기록에 남은 것이다’는 것은 이미 허구적인 것으로 사가들에 의해서 밝혀진 것이며 따라서 Rufinus의 사도신경 해설 서문에 기록된 상기 내용은 사료(史料)의 신빙성이 없는 것이다.
B. 변천
1. 구 로마 신경-현재 형태의 사도신경의 대단히 유사한 내용의 수많은 신앙고백들이 이미 전 소아시아의 북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그 중 “구 로마신경”(Old Roman Creed)으로 알려진 것이 현 “사도신경”에 가장 유사하다.
주후 404년 Aquileian 신부 Tyrannius Rufinus가 “사도신경” 해설의 자료로 “구 로마신경”(R )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신경”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사용된 것은 주후 390년 밀란의 주교 Ambrose가 “밀란 회의” 이름으로 Siricius 교황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처음 언급되고 있다.
2. 초대 교회-초대교회 시대에 많은 다른 지역에서 서로 상이한 많은 단편적 신앙고백이 존재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완성된 사도적 기원을 가진 단일 형태의 범 교회적 “사도신경”은 어떠한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단일의, 완성된 “사도신경”이 존재했으리라는 가설은 초대교회의 신앙생활의 결과를 보고 역으로 추정한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침례 받을 후보자가 현 “사도신경”과 유사한 내용으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침수되기 전에 그 신도는 “나는 사탄과 그의 역사와 이 세상의 일락을 버린다”는 신앙고백을 먼저 공개적으로 고백해야 했다.)
따라서 12 사도가 숙연한 분위기의 비밀 모임에서 이 “사도신경”을 작성했다는 이야기는 경건한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주후 2세기에 가톨릭교회가 믿고 가르쳐온 “신앙수칙”이 사도들로부터 전수되어온 것이라는 이야기는 진실성이 있는 것 같다(Kelly, Early Christian Creeds, third ed.. p. 29. 참고; Kelly가 언급한 가톨릭교회는 물론 현재의 로마 가톨릭교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거룩한 교회”를 참조할 것)
4, 5세기에 이르러서 암브로스와 어거스틴은 성도들에게 매일 이 신앙고백 문을 암송할 것을 권면하였으나 이는 교회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개인 경건시간에 사용할 것을 뜻하는 것이다.(Kelly, p. 370)
3. 중세기-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새벽예배(Mittan) 때와 저녁예배(Evensong)때에 사용하였으며, 영국 국교회에서도 개인기도 시간에 사용하도록 권장하였다.
현재의 사도신경은 주후 724년 Pirminius (혹은 Priminius)에 의해서 최초로 인용되고 있으며 이는 다만 R(로마 신경)을 부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세기에 이르러서는 사도신경은 이미 전 서방 교회에 보급되었다. Pirminius 외에도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의 Gallican Sacramentary, 8세기 초 Auxerre 교구에서 발견된 Missale Gallianum Vetus 등 많은 사본들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서 문구의 확정이 이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Rufinus의 “사도신경 강해”는 다만 로마신경 (R)을 설명하면서 “사도신경”이라고 칭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4. 종교 개혁 기간-루터와 칼빈은 아무 반발을 제기하지 않고 그들의 신앙 교리로 영입하였다.
Kenneth S. Latourette에 의하면 칼빈의 기독교 강요(綱要, The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1559)는 사도 신경의 내용을 토대로 저술된 것이다. 이와같은 사실은 현 장로교회들이 자연스럽게 사도신경을 받아들이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관료(官僚) 개혁자들”(Magisterial Reformers) - 칼빈, 루터, 쯔빙글리 등 - 이 모두 사도신경을 영입한 반면, Anababptist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배경을 보면 “사도신경”에 대한 “정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5. 현대-로마 가톨릭교회와 기독교의 대부분 교회가 예배 시에 사도신경을 사용하고 있다.
1920년 Lambeth Conference에서 “교회의 4개의 기둥의 하나로, 이 기둥 위에 눈에 보이는 교회의 통일을 구축할 것”을 그 호소문에서 채택한 바 있다. 1927년 Lausanne 에서 개최된 World Conference on Faith and Order 총회에서 동 서방 교회의 대표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표현으로 한 음성으로 낭독한 예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와 로마 가톨릭교회 간에는 사도신경에 대한 그들의 입장에 관하여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종성 교수는 주기도문, 십계명, 사도신경에서 기독교와 로마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신조의 권위에 관해서는 두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로마 가톨릭 및 동방 정통교회의 견해다.
프로테스탄트 교회: 이들 교회는 신조의 권위를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신조는 언제든지 성경의 권위보다 낮은 것으로 이해한다. 성경이 신앙과 행동의 유일한 법칙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성경은 칼빈의 말과 같이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거기에다 무엇을 더 첨가할 수 없다. 그러나 신조는 이 성경을 토대로 해서 사람이 가지는 믿음을 설명하기 때문에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개정되기도 하고, 새 것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성경은 하나님에게서 온 말이라고 한다면, 신조는 교리의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성경은 신앙에 관한 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는 데 대하여, 신조는 교회적인 권위를 가지며 상대적인 권위 밖에 가지지 않는다.
로마 가톨릭교회: 그들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그들에 의하면 성경과 전승은 다 같이 진리와 믿음의 규범에 관하여 동등한 권위를 가지는 반면에 신조는 절대적이고 무오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동방 정통교회는 초대교회에 작성된 일곱 가지 에큐메니칼 신조는 절대적이고 옳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비슷하게 로마 가톨릭은 초대 교회의 일곱 신조와 1563년에 만들어진 「트렌트」공의 결의문과 1854년에 결정한 교황무오설까지 절대화한다. 이렇게 주장함으로써 그들은 사실상 교회시대에 작성된 신조를 성경보다 더 권위 있는 것으로 믿는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이나 성령보다 교황과 교회 회의에 더 큰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p. 115-116)
“전통과 성경이 동일한 권위를 갖는다”고 선언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트렌트 회의는 “성경이나 전통의 서로 상충되는 해석이 있을 경우에는 오직 교황만이 최종 결정권을 행사한다”고 또한 천명하였다. 트렌트 종교회의는 또한 연옥설을 강력하게 옹호하고, 면죄부의 효능과 선행으로 속죄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등 비성경적인 교리에 대한 강력한 주장을 조금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문제는 이와 같은 비성경적인 교리를 배척하는 자는 영원히 저주를받을지어다 라고 선언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모든 기독교 신자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영원한 저주 (anathema) 아래 놓여있다는데 있다.
6. 도전
(1) 사도신경에 대한 최초의 심각한 도전은 1438년 동 서 양 교회의 통합을 시도한 Florence 회의 때 서방교회 대표들이 사도신경을 낭독할 것을 제의하자 희랍 정교의 대표 Marcus Eugenicus 가 사전에 못 박기를 “우리는 사도신경이란 것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고 보지도 못했다. 만약 그런 것이 존재했다면 당신네들이 당신네 교회의 권위를 그 바탕에 두고 있는 ‘예루살렘 회의’를 기록한 사도행전(행 15:6ff.)에 기록되지 않았을리 만무하다”라고 사도신경의 사용을 배격한 바 있다.
(2) 두 번째 도전은 르네상스 학자 Lorenzo Valla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15세기 구라파를 풍미한 문예부흥기의 학자인 Lorenzo Valla는 그의 본문 비평 연구 방법을 적용하여 교황청의 교황국 통치권 부인과 함께 사도신경이 사도들에 의해서 작성되었다는 것이 허구임을 발표하였다(Williston Walker, 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4th. ed.., p. 394)
(3) 1444년 St. Asaph 의 주교 Reginald Pecock 는 사도신경의 사도 기원설에 반대를 제기할 뿐 아니라 “지옥에 내려가사” 의 부분을 부인하였다.
(4) 종교개혁 시기에 이르러서는 사도들이 이 신경을 기초했다는 설은 이제는 전설로 조용히 묻혀 버렸다.
(5) 현대 학자들의 결론 : “우리가 현재 보유한 완전한 사도신경의 형태의 것은 그 근원을 6세기 이전으로 거의 추적할 수 없으며, 분명히 5세기 이전에는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은 로마 가톨릭의 주교들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예배순서를 서방 모든 교회들에게 통일화하기에 성공한 8세기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다.”(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1, p. 15)
II. 동기와 목적
침례, 예배, 설교, 요리 문답, 이단 배격, 이방 종교 요소의 방지 및 촉구(Kelly, p. 30)
1. 초대교회는 침례시 신자의 신앙 상태를 확인하는 교육을 위해서 몇 가지 간략하고 요약된 교리문을 작성하게 되었다. Hyppolutus는 로마교회의(3세기 경) 침례의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침례자는 개종자에게 손을 얹고;
(1)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가?”라는 질문에 침례 후보자는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면 이 고백에 따라 침례를 주고 다시 손을 얹고
(2) “당신은 성령에 의해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낳고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어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승천하셔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사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나는...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면 또 침례를 주고
(3) “당신은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죄의 용서와 몸의 부활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따른 고백을 듣고 다시 침례를 행한다. 이 침례식은 많은 증인들 앞에서 행한 공개적 신앙고백이었고 정부나 사회의 고위 지위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때로 “위험 부담”이 되기도 했다. (Augustine은 사회의 상류 계급에 속한 그의 친구 Victorinus가 침례를 받은 후 성도들과 함께 시가행진을 하며 감격해 했던 기억을 기록하고 있다.
2. 이단의 틈입을 경계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면밀하고 용의주도한 침례 조치는 영지주의(주 1)와 기타 다른 이방종교의 요소가(주 2) 교회 안에 틈입하는 것을 방비하기 위한 배려가 있었다. 예를 들면 초대교회 때 가장 유능한 변증학자인 저스틴 마터는 쏘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사람도 아마 크리스천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지혜는 결국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단사상은 그의 “로고스”에 대한 설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의 이해와 설명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신앙으로 고백“할 때 우리는 조심성 있게 그 항목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초대 기독교 역사는 서로 적대적인 교리가 상대방을 압도하기 위한 세력 다툼의 역사였다. 후에 이단으로 규정된 교리가 처음에는 정통으로 믿고 받아드려진 예가 수다했다. 2세기 말까지 기독교 교리는 유대교, 그리스 철학, 동방 신비종교 등이 혼합된 상태였으며 정통이 형성되기까지는 영지주의(주 1)가 강력하게 유행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교리적 혼란의 시기에 이방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여 들어온 새 신자 교육용으로 로마신경(R)이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 바와 같이, 교리를 수립한 높은 신앙과 신학적 통찰력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교리의 다른 한 분야에 있어서는 인간의 한계와 성서에 배치된 맹점을 노출한 것을 무수하게 목격하게 된다.
기독교 초기에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만 침례를 받았으나, 이상과 같은 배경 속에서 “천지를 지으신,” “좋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등의 고백에 따라 매번 침례를 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 기초해서 “잘못”과 “그릇된 해석”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과 의도도 있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특정 교파의 교리 수호의 한 방편으로 되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C. H. Turner는 말하기를, “구 신경들은 요리 문답자들의 신경이었으나 최근 신경은 주교들의 신경이 되었다”라고 평하기도 한다(B. Marthaler, The Creeds, p. 14) (이 평가가 특히 주목을 끄는 이유는 Dr. Marthaler는 로마의 Seraphicum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와 University of Minnesota에서 고대 역사 및 문화 분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로마 카톨릭 신학자인데 기독교 신학자 Kelly의 저술을 인용함으로써 신앙고백으로 채택된 신경의 문제점에 관해 서로가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3. 초기 사도신경의 보편화 운동은 교회 지도자들의 교리수호 목적 이외에도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안정” 목적이 있었다.
Visigoths 족의 왕 Reccared 가 아리안 교파에서 로마 가톨릭 교파로 개종하면서 주후 589년 Toledo 종교회의 결의에 의해서 니케아 신경을 미사에서 암송할 것을 의무화했다. 또한 주후 800년 이후 Charlemagne 대제는 상기 조치를 Frank 제국 전역에 실시할 것을 명하였다. 그 표면적 이유는 아리안 교파의 한 지파인 “입양주의”의 (주 3)의 배격에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의 통치권의 획일성이 그에게 있어서는 더 무게 있는 관심사였던 것이다. 10세기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Henry 2세의 강권으로 로마에서도 드디어 이 조치를 채택하게 되었다. 신앙의 화합은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성취될 것이지 세속 통치자들의 검에 의해서 이루어질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다.
4. 기독교 통일성의 상징으로 이 사도신경이 사용되었다.
(1) “Received Text(혹은 Textus Receptus, 따라서 T로 표시함)으로 알려진 문서 안에서 현재의 사도신경 전문이 발견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568년 출판된 「꾈른(K?ln)」의 성직자 Melchoir Hittop의 글에 그 전문이 담겨있다.
(2) 전술한 바와 같이 현재의 T와 가장 유사한 내용이 최초로 사용된 기록은 710-724년 사이에 Pirminius가 침례 후보자들을 위해 준비한 글에서 발견된다.
(3) 수많은 종류의 고백들이 사용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도신경”으로 불리우는 내용이 절대적인, 그리고 배타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된 배경에는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들, 특히 살레마뉴 대제 (Charles the Great)의 획일성을 위한 집념이 절대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754년 살레마뉴의 아버지 Pepin과 교황 Stephen 2세와의 상호협력조약 체결 후 그들은 예배절차에 있어서 혼란상태의 다양성을 바로잡기 위하여 예배절차의 통일성을 모색하게 되었다. 살레마뉴 대제는 그의 제국 내에 있는 성직자들이 신경과 주기도문을 암송하고 있는지 조사하게 하고, 또한 “성 Athanasius의 가톨릭 신앙, 사도 신경, 및 주기도문을 배울 것”을 명령하였다. 후에 유사한 명령이 모든 백성들에게도 하달되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살레마뉴 대제가 그의 전 제국 내에 실시한 한 조사 결과에 기인한 것 같다. 그는 811-813년 사이 대주교들에게 그들의 감독 하에 있는 교직자들이 시행하고 있는 침례의식과 침례문답에 관한 조사를 하명하였다. 보고 되어온 조사 결과는 그가 평소에 의심해온 바를 입증한 것이었다. 천차만별의 다양한 내용들에 실망한 황제는 813년 종교회의를 개최하고 각 주교들에게 획일적인 예배의식과 특히 침례의 신앙고백 내용의 통일성을 요구하였다. 이리하여 “사도신경”(T)는 9세기에 이르러서 전 서부 유럽지역에 독점적인 지위를 획득하게된 것이다(Kelly, p. 420-425).
지금까지의 역사를 대강 다시 상고해 보면, “사도신경”이 믿는 자들에 의해서 자신의 가슴 속에 가득 찬 신앙의 고백이 뜨겁게 넘쳐서 다른 사람들의 가슴 속에 “감전”되어 전파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게 된다. 오히려 정치가들의 한 통치 수단으로 전파되어 온 것을 보게 된다. 불행한 일이다.
III. 교리와 신학적 의미
초기에 기독교의 기본 교리 중의 하나인 삼위일체론이 정립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했다. “교회”에 관한 개념은 그 후에 주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우월권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제 12항목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문제가 되는 항목은 조금 더 주의 깊게 고찰하고자 한다.
1. “전능하사”: 이미 초기 헬라어의 “만물을 다스리는 자”(PANTOKRATOR, All-ruling)의 의미는 상실되어 가고 라틴어 “전능하신”(OMNIPOTENS, Ability to do all things)을 의미하는 단어가 대치하게 되었다.
2.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은 기독교가 다른 모든 종교와 다른 점을 가장 결정적으로 표현하는 내용이다. 영지주의자들의 주장 곧 “선한 하나님이 악한 물질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는 주장의 강력한 배격인 것이다. 이 구절은 로마 신경(R)에는 언급이 없으나 훗날 “사도 신경”(T)에 삽입되었다.
3. “성령으로 잉태하사... 나시고”: Rufinus는 이 부분의 해설에서 “ ‘아들’은 하늘에서 영원한 ‘아들 ’이지 다른 형체를 취할 수 없고 다만 ‘잉태하고.. 나신 것’은 동정녀의 태에 자신을 위한 한 성전을 지은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8세기 말에 재발한 “입양설”(Adoptionism)의 이단을 색출하는 데 사용된 문구가 되었다. 당시 Alcuin은 주장하기를 “ 예수님은 지상생활 시에 하나님 이하의 신분이 되신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입양설 주 3).
4. “음부에 내려가시고”의 문제점: 가장 오래된 R에도 동방 교회의 신경에도 언급된 바 없는 구절이다. 다만 6세기의 서반아 교회 신경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7,8세기의 프랑스 교회의 신경에도 나타난 바 있다.
“사도 신경” 강해를 시도한 Rufinus 자신도 정확한 출처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다만 “장사되어”라는 말을 뜻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 “지옥 행”설은 초대 교부들Ignatius, Polycarp, Irenaeus, Tertullian 등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언급된 바는 있다. 이들의 성서적 근거는 마12:39; 롬10:7; 골1:18; 행2:27-31; 시16:8; 벧전3:19, 4:6 등이다.
Alister McGrath는 “그가 죽은 자들에게 내려갔다 (He descended to the dead)”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고 묻고” 이 말은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죽으셨다“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께서 인간이심이 분명했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도 분명했다면 그의 죽음도 분명한 것이었고, 마땅히 죽어야할 모든 인간의 운명을 함께 짊어졌다는 것이다. ”그가 죽은 자들에게 내려가신 것은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추상적인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Christ was not raised “from death”(an abstract idea),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but “from the dead” Acts 2:24; Ro. 1:4; Col. 2:12)”는 것이다. William Barclay에 의하면 시16:10을 인용한 행2:27에서 “음부”(Sheol)는 “지옥”(Hades)으로 번역되었으나, 다만 “하계”(죽은 자들의 땅)을 뜻한다는 것이다. 지옥은 마5:29-30에서 “Gehenna”로 표기되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의 지옥에 내려가사“는 원래 ”지옥과는 무관한 것이다.“ 다만 ”죽은 자의 땅에 내려 가셨다“는 것이다. 목적은 무엇인가? Barclay에 의하면 Calvin의 ”지옥에 내려가서 인간의 고통과 징벌을 대신 지셨다“는 주장은 그른 것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Sheol은 처음부터 지옥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은 “구약 성도들에게 가서 복음의 승리를 전했다.” 문제는 “내가 이것을 믿느냐?”에 있다. 그렇지도 않다면, 다른 대안으로 “복음을 듣지 못한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이것이 곧 Universalism의 주장이다. 2세기말 Origen도 말하기를 ”종래는 사탄까지도 하나님의 사랑에 굴복하여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 해석이 옳다면 ”사도 신경“ 맨 처음의 시작에, ”나는...을 믿는“라는 내용이 교리를 포함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Barclay는 “따라서 이 구절은 시적(詩的) 차원을 넘어서 신학적 차원에 들어가면 사도 신경에 삽입될 수 없다”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조금도 감소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가톨릭 신학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Thomas Aquinas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음부에 내려가서 원죄로 말미암아 갇혀있는 의인을 대동하고 올라오셨다”는 것이고, “세례 받지 않은 어린 아이들을 또한 구원하셨다. 그러나 연옥에서 아직 성결의 기간을 지내고 있는 영들에게 사면을 선포하신 것은 아니다.”라고 해설한다. 다시, 문제는 “내가 이것을 믿느냐?”에 있는 것이다.
Han Urs Balthasar에 의하면, “음부”란 “무신론자들의 영혼 내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허무를 뜻하며 예수님께서 그 곳에 내려가서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신 것이다”는 것인데, William Barclay의 주장과 같이 “시적(詩的) 해석”의 차원에 들어가는 것을 본다.
한국어 번역본에는 왜 이 구절이 누락되어 있는가? 이종성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는 사도 신경에는 그 조항이 빠져 있는데, 그 이유는 알 길이 없다. 옛 로마 교회가 사용한 것을 그대로 받아 드려서 그것을 빼버린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칼빈이 “음부에 내려가사”를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칼빈의 신학 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는 한국교회이기 때문에 그 조항을 빼버렸다는 것이 더 정당한 해석인 것 같다.(이종성, p. 172)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관찰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 신학자의 의견에 좌우된 내용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 자신의 신앙 고백으로 암송하거나 낭독한다는 것은 반드시 재고가 필요할 것이다. 이제 독자들은 ”사도 신경“ 내용의 일부에 대해서 깊이 성찰할 것이며, 특히 무비판적으로 이 내용들을 예배 때에 고백한다는 것은 합당치 않을 것이다.
5. “죄의 용서”: Augustine은 지금까지의 죄를 침례로 다 사함 받았으나 그것만으로는 온전치 못하다. 매일의 세례와 기도와 자신을 크게 겸비케 하는 회개가 있어야할 것을 뜻한다고 한다.
6.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그것은 곧 “거룩한 가톨릭교회”를 믿사오며 “교회”에 “catholic”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Ignatius 였다(A. D. 107년경). (Catholic은 헬라어 kath’ holou(on the whole, universal)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이라는 용어가 사도 신경에 삽입된 시기는 주후 6세기 이후이다(김선운, p. 149).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 대한 정의(定義)에 있다.
Pocket Catholic Catechism(1989)을 저술한 John A. Hardon의 견해를 들어 보자. “참 교회의 통일은 믿음과 교제의 통일이다... 교제의 통일을 통해서 신도들은 로마의 주교에게 연합된 주교들의 권위에 순복한다”(By their unity of communion, the faithful submit to the authority of the bishops united with the Bishop of Rome.) (Hardon, p. 81)
“엄격하게 말해서 교회(the Church)가 선언한 모든 것을 계시된 진리로 온전히 받아드리는 사람들만이 가톨릭교회의 교인이다.“ 그리고 Hardon 은 ”제 2 바티칸 공회“(1962)의 발표문을 인용하고 있다.
“세상에서 하나의 단체로서 구성되고 조직된 이 교회는 가톨릭 교회에 존재하고 있으며, 가톨릭교회는 베드로의 후계자와, 또한 그와 함께 교제를 유지하는 주교들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다.” (This Church, constituted and organized in the world as a society, subsists in the Catholic Church, which is governed by the successor of Peter and the bishops in communion with him.) (이태릭체는 저자 Hardon의 것임)
그는 계속해서 “이 선언문에서 중요한 단어는 subsists라는 동사이다. 조심스럽게 선택한 이 단어의 배후에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남긴 유산에 대한 실질적이고도 충만한 (actual fullness, 즉 충만한 소유권)에 대한 주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실질적 충만이란 그가 계시한 진리의 충만, 그가 재정한 성례들의 충만, 그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할 권한에 대한 충만 등이고, 이 충만이 바로 로마 가톨릭교회에 속해 있으며 로마의 주교가 곧 이 교회의 가시적 수반이다(--resides in the Catholic Church of which the Bishop of Rome is the visible head)”라고 기록하고 있다. (underline은 본 원고 작성자의 첨가임). “하나님의 백성이 로마 주교의 통치를 받고 있다”고 “거룩한 공회를 믿는 것”이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기독교 신자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톨릭 신도들과 함께 서서 “나는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신앙 양심상 허락지 않는 일이다.
Adolf Harnack 에 의하면 5세기경에 이르러 “가톨릭”이라는 용어는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여 (원래 universal, 갈3:28) 로마를 중심한 소위 “사도 교훈 계승 교회”를 지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Cyprian은 주장하기를 “가톨릭교회는 하나의 감독만을 가지며, 감독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라고 하였다. 그의 의도는 아마 이단 틈입에 대한 교회의 보호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
나 처음의 바른 의도는 훗날(아마 콘스탄틴 로마 황제 이후) 권력을 추구하는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주구(走狗)로 전락한 듯하다.
Crock 이라는 로마 가톨릭 신학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1572년 전에 칼빈은 어디 있었는가” “1534년의 Henry 8세 전에 성공회는 어디 있었는가?” “1738년의 요한 웨슬리 전에 감리교회는 어디 있었는가?” “1817년 토마스와 알렉산더 켐블 이전에 켐블교도들은 어디 있었는가?” “그들은 모두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것처럼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자들이다.”(Clement H. Crock, Discourses on the Apostles’ Creed) 교회관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의 신조를 함께 낭독하도록 성도들을 인도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지도자의 역할이다.
Hardon은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왜냐하면 그는 신적 주인(Divine Master)로부터 모든 교회의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권위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 권위를 교황의 수반(首班)적 지위라고 칭한다. 이 권위는 우주적 교회(universal church)를 교육하고 통치하는 최고 권위를 말하며 이 권위는 다만 명목상의 권위가 아니라 실질적 권위이다. 이 권위는 다만 명예적인 권위가 아니라 가톨릭교회에 소속한 모든 사람의 양심에 구속력을 갖는 권위를 뜻한다(It is not merely honorary, but binding in conscience on everyone who belongs to the Catholic Church. Hardon, p. 87)”라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가 “거룩한 공회를 믿는다”(I believe in... the holy catholic church)는 신앙을 고백할 때에 우리는 “양심의 구속력”을 갖는 로마 가톨릭 교황에게 복종을 다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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