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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복음의 중요성을 왜곡시키는 사람들에게 (정이철 목사에게) - (이재위 목사)

김한길 0 7,216 2016.10.12 21:33
이재위 목사

 부활복음의 중요성을 왜곡시키는 정이철 목사에게 


 

 

필자 주: 춘천한마음교회와 김성로목사님과 같은 침례교단에 소속된 목사라는 공통점 외에는 개인적, 공개적으로 전화 통화나 만난 적이 없으며 애틀랜타에서 이민 목회를 하고 있는 평범한 목사이며 보수개혁신학을 공부한 성경 연구가일 뿐입니다.
반론을 제기한 이유는 김성로목사에 대한 정이철목사의 독단적인 주장은 극히 주관적이며 편협적인 관점으로 전달된 왜곡된 주장임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는 바른믿음 측에 이 문제를 제기 했지만 제 아이피를 차단하고 제가 반론한 글들을 강제 삭제하여 진지한 소통의 기회를 정이철목사께서 대표로 있는 바른믿음 측에서 무시하였기 때문에 필자는 타 언론사를 통해 정목사님의 왜곡된 주장들에 대한 반론을 제기 하게 된 것입니다.
김성로목사님의 관한 자료들은 유트브에 링크된 설교와 한마음교회 책자들, 칼럼, 성도들의 간증을 토대로 분석하였다는 것을 먼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오해나 편견을 잠시 내려놓고 저의 주장을 찬찬히 읽어 주셔서 객관적으로 판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부활 메시지를 강조하면 십자가의 복음이  훼손되는가?

바른믿음 대표이며 앤아버 반석장로교회 담임목사인 정이철목사는 침례교단 춘천 한마음침례교회 김성로목사를 십자가를 무시하는 사악한 이단으로 정죄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정이철목사의 주장이 전달자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인한 편협적이고 왜곡된 주장이며 또 김성로목사가 주장하는 부활의 본질적 의미와 몸의 기능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십자가와 부활의 상관관계에 대해 변증학적인 관점에서 논하려고 한다.

먼저 필자가 믿는 십자가가 주는 의미는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와 완전한 사랑의 증거이며 우리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임을 고백한다. 십자가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며 하나님의 완전한 속죄는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정이철목사의 주장을 짧게 요약하면 첫째, “기독교의 중심은 십자가이며 몸의 심장이다. 십자가를 믿고 의지하면 부활은 절로 따라오는 결과이니 부활이 기독교의 심장이라고 하면 신앙이 비틀어지게 된다.”

둘째, 십자가를 통해 성경 전체를 조망해야 기독교가 보인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수 있는 키는 십자가이며 십자가를 중심으로 보지 않으면 부활의 의미도 알 수 없다.

정이철목사는 몸의 심장과도 같은 십자가를 무시하고 부활을 몸의 심장이라고 주장하는 김성로 목사를 십자가를 무시하는 사악한 이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의 주장에는 심각한 Frame of reference(가치기준)의 의한 커뮤니케이션 왜곡현상임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성경에 어린아이에 대한 표현의 의미를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때로는 어린아이의 우둔함을 의미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정이철목사의 대부분의 주장은 전달자가 어떤 관점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제대로 전후 문맥을 파악하지 않고 전달자의 의도와 관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편협적 신학적 개념과 관점으로 이해하다 보니 정작 전달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을 왜곡 편집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을 보게된다..
김성로목사께서 주장하는 부활이 몸의 심장과도 같다는 표현은 정이철목사가 주장하는 몸의 중심적인 관점이 아닌 몸의 기능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몸의 기능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십자가는 몸의 심장이 아니라 몸의 피와 같다.

왜냐하면 피를 통해 뇌와 모든 내장기관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혈액은 우리 몸에 여러 영양물질을 공급하며 구석구석 생명을 살아 숨쉬게 하는 인간의 몸에 없어서는 안될 생명을 소생케 하는 것이 피의 복음 십자가인 것이다.
성경에서는 약 400여 곳에서 피를 언급하고 있다. 레위기 17장 11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피가 아무리 건강해도 심장에서 각 신체로 보내 주지 않으면 영양물질 공급이 중단되어 몸 전체에 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국 몸의 기능적인 관점으로 볼때 십자가와 부활의 상관 관계는 십자가는 인간의 전 영역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피와 같다면 부활은 피를 각 기관에 보내게 하는  심장과 같은 것으로 이해 해야 할 것이다.

김성로목사는 한국교회가 십자가는 강조했지만 정작 부활을 강조하지 못해 피를 몸 기관에 뿜어 주는 심장이 건강하지 못한 결과로 성도들이 삶에 변화가 없고 복음의 재 생산이 일어나지 않은 결과가 생겼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분당 우리 교회 이찬수목사는 2016년 3월 27일 부활절 설교를 통해 한국교회가 십자가는 40번을 강조했다면 부활은 한번 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본인은 400:1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정작 본인도 십자가는 강조했는데 부활을 설교하지 않았고 묵상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춘천한마음교회 이옥매할머니의 영상간증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요 근래 이렇게 아름다운 간증을 본적이 없습니다. 나는 이 할머니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표정을 보시고 그 안에 있는 부활신앙의 능력을 보시면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라고 하며 분당 우리교회 성도들에게 이옥매할머니처럼 부활의 신앙의 대한 믿음이 회복되기를 권면했다.

즉 몸의 기능적인 관점에서 십자가는 각 기관에 힘과 생명을 공급하는 몸의 피와 같다면 부활은 피를 역동케 하는 심장과 같은 것이다. 즉 심장을 중심으로 피가 각 기관으로 뻗어 갈때 몸은 역동적이며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다.

유명한 부활 사건 연구가 게리 하버마스박사는 “부활이야말로 시작부터 초대 교회사 선포한 중심 메시지”였다고 주장한다.
정이철목사는 “ 그러므로 기독교의 중심은 십자가이다. 십자가를 믿고 의지하면 부활은 절로 따라오는 결과이니 부활이 기독교의 심장이라고 하면 신앙이 비틀어지게 된다.” 라고 하는 주장은 자신의 편협적 신학적 개념과 관점으로 이해하여 정작 전달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주장임을 보게 된다.

 
2. 십자가의 피와 부활의 관계를 통해 왜 부활을 증거 해야 하는가?

 김성로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누가 죽은 십자가 인가?를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자신의 사도행전 칼럼을 통해 십자가의 피와 부활의 관계를 통해 왜 부활을 증거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피’그리고‘십자가’ 사건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누구의 피인가?’와‘십자가에서 누가 죽었는가?’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 누구인지 모르면 십자가 사건은 그냥 한 사람의 죽음일 뿐이며 그 피 또한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 것을 확증하였을 때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죽으신 것이며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는 ‘하나님의 피’(성자 하나님의 피) (행 20:28)인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피(성자 하나님의 피)라는 의미가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론의 관점에서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의 피는 평범한 인간의 피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는 보배로운 피임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피(성자 하나님의 피)라고 사도행전 20:28절의 말씀을 근거로 전하고 있다. 이렇게 부활을 통하여 십자가의 참된 의미와 예수의 보혈이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부활을 통해서 십자가와 보혈이 어떤 것인지가 재 조명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권능으로 ‘부활’을 증거한 이유인 것이다.”

즉 김성로목사는 부활이 강조된다고 해서 십자가가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통해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증될 때 십자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롬마서 1:4 절을 통해 부활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는 구절로 변증학적인 관점에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롬 1:4)

본문의 말씀을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 이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부활사건을 통해 인간의 인식에 완전히 인정되셨다는 뜻으로 이해 해야 한다. 

부활이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의 증거로 변증학적인 관점에서 달라스 신학교 신학석사(Th.M.) 남캘리포니아 대학교 철학박사(Ph.D)인 J.P. 모어랜드(Moreland) 박사의 주장이다.

 “부활 사건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으로 확증(확실히 증명하다)케 하는 지상 최고의 역사적 사건이다.”
또 영국 버밍엄 대학교 철학 박사, 독일 뮌헨 대학교 신학박사 학위, 현재 탈봇 신학대학원 철학 연구 교수로 재직중인 기독교 변증학자 윌리엄 크레이그 박사는 “부활의 증거의 양과 질을 따져보고 기독교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있는가? 물론이다.” 라고 주장한다.

왜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에 대한 질문에 얼라이언스 신학대학원에서 전도와 현대 사상 학과장을 역임한 기독교 변증학자 재커라이어스의 박사의 견해도 역시 왜 예수님을 유일한 길로 믿을 수 있는 첫번째 이유를 예수의 부활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부활사건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했다. 부활이 사실이라면 예수의 신성에 반대되는 주장을 펴고 있는 다를 모든 종교체계는 진리일 수 없다. 그런데 예수의 부활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설득력이 강하다. 인간의 운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반으로 한다. 그리고 부활은 그분의 신성을 확증한 사건이자 그분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천국 문을 열어준 사건이다.”

김성로목사는 누가 죽은 십자가인지도 모르고 또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모른체 십자가를 우상처럼 붙잡지 말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이철 목사는 김목사의 주장을 왜곡 편집하여 김목사가 십자가를 우상이라고 주장했다고 부활로 십자가를 교묘히 가리는 사악한 이단이라고 주장 하고 있는 것이다.

김성로목사의 견해처럼 필자도 십자가의 참 능력은 십자가의 바른 의미를 알때 십자가의 참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 선악과 과실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의 참된 의미를 알때 선악과는 참 능력을 발휘하는 것 처럼 말이다.
즉 김성로목사는 부활을 몸의 기능적인 관점에서 기독교의 심장이라고 주장하고 “변증학적인 관점”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성경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증거의 관점으로 보는 반면 정이철목사는 몸의 중심적인 관점에서 십자가를 몸의 심장이라고 주장하고 십자가를 믿으면 자연히 따라오는 결과라고 주장하는 전제적 믿음에 근거한 종말론적 부활의 관점으로 이해 하다 보니 김성로목사님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극단적이며 왜곡된 주장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부활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인식, 확증될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인간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르게 볼 수 있다고 하는 김성로목사의 의견이 변증학적인 관점에서 볼때 설득력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3. 성경 전체를 조망하는 것이 십자가이며 십자가를 모르면 부활은 신기한 하나님의 쇼인가?

또 정이철목사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수 있는 키(key)는 십자가이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보지 않으면 부활의 의미도 알 수가 없다. 십자가를 모르면 부활은 하나의 신기한 하나님의 쇼(Show)일 뿐이다.” 라고 주장한다.

즉 정이철목사는 십자가를 통해 성경 전체를 조망해야 기독교가 바로 보인다? 라고 주장한다. 속죄론적 관점에서는 정이철목사의 주장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성경 전체적인 핵심을 볼때는 바른 주장이라고 할 수 없다.

성경의 전체 키를 이해하려면 십자가가 중심이 아닌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더 폭넓은 시선을 바라 볼 수 있다. 구약은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그리스도의 대한 예언의 말씀들이 신약에서 구약의 모든 예언을 이루신  그리스도가 예수임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셔서 인간의 완전한 속죄와 부활의 산 소망을 주심으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 성경 전체적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성경전체를 통해 붙잡아야 할 키는 창세 전에 숨겨진 그리스도의 비밀인 예수이며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야 바른 표현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임을 마지막으로 확증할 수 있는 믿음의 키는 “부활”이며 부활을 통해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누구인가를 정확히 인지할때 십자가의 참된 의미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 2:2-3)

결론적으로 정이철목사의 주장처럼 십자가를 믿고 의지하면 부활은 절로 따라오는 결과이니 부활이 기독교의 심장이라고 하면 신앙이 비틀어지게 되며 십자가를 통해 성경 전체를 조망해야 기독교가 보인다.” 라는 주장은 몸의 기능적인 관점에서 보지 못한 frame of reference(가치 기준) 문제로 인한 곡해로 볼 수 있고 부활을 변증학적 관점에서 증거의 기능으로 보지 못한 신학적 부재로 나타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또 정이철목사는 부활을 증거의 관점으로 생각하지 못한 결과로 성령의 사역과 또 구원론에 심각한 신학적 부재를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차후에 정이철목사가 오해하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받은 구원" 이 무엇인지 즉 은혜에 의한 믿음의 본질과 구원 그리고 이 구절에 대한 성령의 사역에 대해 논하기로 할 것이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심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나의 그리스도 나의 주님 되어 주셨다는 사실은 수천 번 수만 번 수십 만번 외쳐도 또 외치고 싶은 이 땅에 어떤 소식보다 큰 사건이며 Good News임에 틀림없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 아멘


애틀랜타 뉴에덴침례교회 

담임목사 이재위     
[이 게시물은 CKSB님에 의해 2016-10-16 02:58:08 게시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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